'기적'으로도 멈출 수 없는 검은 눈물

슥슥/난이 문화이야기 2008/05/26 16:08
영화 <검은 눈물>과 복진오 감독
        
<검은 눈물>은 태안 사태의 본질과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검은 눈물>은 태안 사태의 본질과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07년 1월 7일 새벽 3시 경 강풍으로 높은 파도가 일면서 서해 먼 바다 일대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새벽 5시 23분께 풍랑주의보 속에서도 항해를 강행하던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예인선단과 정박해 있던 유조선과의 충돌이 예상됐다. 대산해양청 관제센터는 삼성중공업 예인선단에 무선으로 여러 차례 항해를 중단할 것과 충돌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경고는 무시됐다. 결국 삼성중공업의 예인선단은 유조선 헤베이 스리피트호를 들이받았다. 국내 최대 기름유출 사건을 이렇게 일어났다.

올해 다섯 번째를 맞은 ‘서울환경영화제’의 지구전 주제는 ‘태안, 그리고 생명의 요람 바다’이다. ‘지구전’은 매년 주요 환경이슈를 선정해 그와 관련된 영화들을 소개하는 테마전으로, 올해는 지난 연말 태안 일대를 덮친 ‘허베이 스리피트호 기름유출 사건’을 기록한 <검은 눈물>을 필두로 해양 생태계는 물론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기름 유출 사고와 해양 오염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지구전'의 지원작이기도 한 복진오 감독의 <검은 눈물>은 100만 ‘기적’ 속에 가려진 태안 사태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지난 연말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의 무리한 항해로 발생한 ‘허베이 스리피트호 기름유출사건’은 태안을 삽시간에 검은 공포로 휩싸이게 했었다. 정부는 “기름은 먼 바다로 나갈 것이며, 육지로 오더라도 24~36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주민을 안심시켰지만 그렇게 발표할 당시 이미 기름은 태안을 덮치고 있었다. 기름유출 13시간 만에 태안 일대 해안은 검은 바다로 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포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100만의 천사’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기름때는 걷히기 시작했고, 태안을 급습했던 공포도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연일 언론과 방송은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을 지면과 화면에 담았고, 모두 ‘기적’이라 말했다. 하지만 ‘태안 사태’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100만의 천사’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기름때는 걷히기 시작했고, 태
안을 급습했던 공포도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안의 진실은 100만의 ‘기적’ 속
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안 주민들의 ‘검은 눈물’ 속에 있다.

해안선을 뒤덮었던 기름때는 가셨지만 태안의 생태계는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죽었다. 수확을 앞두고 있던 굴양식장의 굴들은 모두 폐사했고 세계 5대 갯벌에 살아가던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 덕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민들도 죽어갔다. 태안의 진실은 100만의 ‘기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안 주민들의 ‘검은 눈물’ 속에 있다.

하루 일당이라도 벌기 위해 기름제거에 나서는 태안 주민들. 그들의 평균 연령은 60세를 웃돈다. 제대로 된 방제작업복도 없이 태안 주민들은 매일 발암성물질과 유해물질이 가득한 기름을 맨손으로 닦아낸다. 숨쉬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한 할머니가 연신 헛구역질을 한다. 다른 한 할머니는 두통을 호소한다. 아무런 안전장치나 보호 없이 기름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태안의 ‘현실’이다.

기름을 흠뻑 먹은 갯벌과 바위는 기름을 닦아내도 내일이면 다시 기름이 흘러나온다. 연일 고된 노동과 생태계 복원에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는 갯벌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태안주민들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흐른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면서 ‘분노의 눈물’이기도 하다.

거기에 갯벌이 있어, 바다가 있어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예인선단의 무모한 항해로 그들은 평생 살아갈 생존의 터전을 잃었지만, 사고를 일으킨 기업도, 정부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49억 원의 보상금을 약속했지만 20억원 정도가 이미 방제작업비로 들어갔고, 나머지 20억 중에서도 주민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혜택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검은 눈물>은 이처럼 ‘기적’ 속에 가려진 태안의 암담한 현실과 태안주민들의 막막한 삶, 그리고 그들의 분노, 끝없이 차오르는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파도에 밀려왔던 것은 검은 기름이었지만, 그것이 남긴 것은 ‘검은 눈물’이다.

 <검은 눈물>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고, 이어 생생카페에서는 '바다가 죽던
날 : 유류 유출 사고와 해양오염'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검은 눈물>의 복진오 감독.

영화상영 이후 관객과 만난 복진오 감독은 “태안 문제를 다루는 많은 다큐멘터리와 영상이 있었지만 태안의 100만 기적과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주민들의 보상문제나 훼손된 태안 생태계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다큐멘터리 제작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한 학생이 삼성에 대한 과한 책임전가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복 감독은 “그 부분은 굉장히 명확하면서 누구도 명백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하루 6000만원을 벌어들이는 해양크레인을 악천후 속에서도 멈추지 않게 한 것이 개인의 의지라고 볼 수 없으며, 해양일지 위조는 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특검에서 확인됐듯이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기관은 없다”면서 “하지만 국가의 주인은 한 재벌이 아니라 국민이며, 국가는 국민의 삶을 위해, 태안 주민의 생존권을 위해 나서야 하며, 삼성 역시 가해 크레인의 주인된 기업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 해결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태안주민들을 위해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태안주민들의 보상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당당히 와서 서명하는 청소년들과 시민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희망을 느꼈다”며 “국민들의 작은 관심, 작은 실천이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과의 대화’ 이후 만난 복진오 감독은 “다큐제작은 어떤 문제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가지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관객들과 만나면서 관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영화에 대한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면서 “앞으로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검은 눈물>은 태안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다. 광우병을 비롯한 다른 사회 문제들 속에서 벌써 잊혀지고 있는 태안 문제에 대해 환기시키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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