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에 누가 사는지, 내 옆집의 삶이 어떤지 사람들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나 하나 살아가기도, 우리 가족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쁜 일상 속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오히려 사치스럽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도심일수록 그 정도가 크다. 자연의 속도보다 도시의 속도가 더 빠른 탓이다. 하지만 이런 도심 속에서도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그들이다.
지난 2001년 서울시가 성미산을 깎아 지으려던 배수지 건설 사업을 주민들의 힘으로 막아내면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 마을의 자연과 생태계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마을 사람들은 ‘성미산 마을축제’를 매년 열며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행복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지난 7일 ‘2008 성미산 마을축제’ 현장에서 2001년부터 축제에 참여해 온 유창복 (사)사람과 마을 문화분과 이사를 만나 성미산 마을축제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마을 사람들을 그를 '짱가'라 부른다.
-성미산 마을 축제가 올해로 8회를 맞았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성미산 마을축제의 역사는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서울시에서 성산, 망원, 서교동 등에 수돗물을 공급할 배수지가 필요하다며 성미산 자락에 배수지를 짓겠다고 사업 공고를 냈다. 성미산을 깎아서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성미산이 훼손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배수지 자체도 공익적 사업이긴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과 논의해 본 결과 당시 꼭 필요했던 부분이 아니었고, 기존 시설을 보강만 하더라도 충분히 수돗물 공급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여러차례 전문가 공청회를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웅성웅성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으면서 성미산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려낼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제1회 숲속음악회’다. 성미산 마을축제의 전신인 것이다. 당시 1회 축제에 마을 주민 1천여 명이 모일 정도로 음악회는 성공적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성미산 문제를 공유하게 됐고, 결국 서울시가 2003년 사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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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 골목으로 들어선 축제 행사장. 골목을 따라 늘어 선 프로그램 코너들 모습. <사진 컬처뉴스> |
- 언제 마을축제로 변화됐나?
2003년 성미산지키기 투쟁이 성공하면서 이후에는 ‘숲속음악회’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음악회에서 ‘마을축제’ 형태로의 변화도 가져왔던 것 같다. 하지만 초기에는 공간문제 등으로 고수부지, 하늘공원 등지에서 개최됐었는데, 마을과 거리가 있어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마을 앞 도로를 막고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진짜 마을축제 같은 축제를 개최했다.
- 올해는 골목에서 행사가 진행됐는데, 지역 사람들과의 마찰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행사를 지켜보신 분들이 많은 호응을 해주시고 협조를 했지만 몇몇 건물주들과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올해 마을 앞 도로 통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산에서 모든 행사를 하는 것은 훼손문제도 있어 골목과 학교, 성미산으로 공간을 세분화시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에도 교통문제나 소음문제로 항의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자기 집 마당에서 소음을 내고, 교통을 통제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오랜 시간 동안 양해를 구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8년째 해오지만 이사가 잦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설득과 양해의 과정은 지난하다. 하지만 방법은 더 많이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다. 앞으로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 주민들과 마찰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주민들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성미산지키기 싸움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3년 가까운 시간을 마을 주민들이 함께 성미산을 지킨 것인데 그런 과정에서 서로 많이 친밀해졌다. 특히 2002년 3월 13일 용역깡패들이 마을 주민들과 대치한 상황이 있었는데 우리는 당시를 ‘3.13대첩’이라고 한다. 그때 12시간 정도를 그들에 맞서 주민들이 싸웠는데 할아버지들이 주민들 앞에 서서 청장년층을 보호했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건방지게 산을 지켰다고 하지만 실상은 산이 우리를 지킨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고, 주위를 돌아보게 했다. 성미산이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이어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산을 지킨 것이 아니라 산이 우릴 지킨 것이다.
- 현재 성미산이 다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산 정상은 서울시가 배수지 사업을 위해 수용했고, 나머지 부분은 사유재산이다. 그것이 배수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아파트 개발업자에게 넘어갔다가 아파트 건설이 불가능해지자 홍익재단이 그것을 수용했다. 홍익재단은 체육시설로 되어 있던 성미산을 도시계획 시설로 변경하고, 현재 홍익대에 위치한 초등학교와 같은 부설 교육기관들을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교육시설 자체도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수요에 따라 짓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교육기관을 옮기는 것은 공익적 의도라고 볼 수 없다. 현재 성미산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공익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또한 홍익재단의 학교 이전이 시작되면 성미산에 아파트나 다른 건물이 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게 되면 성미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2차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벌써 시작했고,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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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작은 덩어리의 커뮤니티였던 것들이 점차 커 지면서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빅뱅 '이라고 한다. 산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마을로 내려와 '빅뱅'한 것이다." <사진 컬처뉴스> |
- 성미산을 지켜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축제 이야기를 해보자. 올해 축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 가장 방점을 찍은 것은 무엇인가.
지역사회 주민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깊이 가는 것이다. 기존 커뮤니티만이 아니라 지역의 미술학원이나 부녀회, 주민자치위원회 등과 함께 폭넓게 마을축제를 가져가는 것을 목적에 두었다. 그래서 주민자치위원회가 따로 진행해오던 주민 노래자랑행사인 ‘아카시아축제’도 함께 의기투합해 이번 마을축제에서 같이 진행됐다. 그렇게 마을 동장이 지역민들과 행사관계자들 사이의 중재역할을 하고 마포구청에서도 마을 커뮤니티 축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후원했다. 이렇게 주민들을 좀 더 폭넓게 만나고 깊이 만나가면 마을축제는 물론 마을 공동체의 외연이 넓혀진다고 생각한다.
- 마을의 문화예술동아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궁금하다.
배수지 건설사업을 막아내고 마을축제가 열리면서 마을 커뮤니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영향 때문이지 환경단체가 들어오고, 친환경 가게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가 세워지고, 생협이 들어오고, 마포 FM같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도 생겼다. 처음에는 작은 덩어리의 커뮤니티었던 것들이 점차 커지면서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빅뱅’이라고 한다. 산에서 응축됐던 에너지가 마을로 내려와 ‘빅뱅’한 것이라고 말이다. 문화예술동아리도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마을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참가 의사를 밝히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활동했다. 또 그것이 마을축제에 보여지는 것들을 보며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그렇게 동아리가 생겨나고 활성화되고 있다.
- 앞으로 축제와 마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민들과 끊임 없이 만나고 소통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축제가 좀 더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더 넓은 만남과 깊이 있는 만남이 필요하다. 그것이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그런 것들을 학습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지만 서로 더 많이 만나고 알아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